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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담.

김중혁 소설가 (한겨레 21에서 봤던 것을 기억에 의존해서 쓴 거라서 정확하지 않을 수도 있다): 시간을 아껴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낭비를 싫어한다면 아무 가치없는 쓸데없는 이야기를 썼다 버리고 썼다 버리는 일인 소설쓰기를 할 수 없을 것이다. ...나는 시간을 아껴야한다는 생각을 해본 적 없다, 그 많은 시간을 뭐하러. 시간을 죽이고 죽여도 남아돌아서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한 문장이 세 페이지를 넘어가는 소설도 써보고, 대화가 하나도 없는 소설, 대화로만 이루어진 소설 등등. ...시간을 버리고 대신 다른 것을 버리지 않는 것이다.  


...사실은 소설 읽기가 더 그렇다. 소설쓰기가 그렇게도 부질없는 짓이라면- 대체 그걸 소비하는 인간은 뭐냐 말이다-.-
나도, 내가 성공을 하고 싶은 것인지, 편하고 즐겁게 살고 싶은 것인지 헷갈릴 때가 많았다. 그런데, 긴장을 풀어줘서 일을 더 열심히 하게 해준다든지(애써 생각해 냈는데, 나에겐 해당없다. 긴장이 풀리면 계속 풀어져 있고 싶지ㅡㅡ)라는 이득이 전혀 없이도 소설이 읽고 싶었던 것을 보고 알았다, 새삼. 분명, 인정받는 것은 무지하게 좋고, 여전히 밥값은 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선택을 해야만 한다면-.  



어제 만난 ㅅㅈ이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를 마음에 들어해서 새삼 생각해봤다.
두 권 밖에 안읽었지만, 그리고 흔한 말이지만, 박민규에게는 분명 마이노리티의 감성(그러나 말하자면, 숫적으로, 메이저리티가 공감할 법한)이 있다. 대체 누가 (작정하고 신파로 흐를 생각이 아닌 다음에야) 직장에서 짤리고 부인에게 이혼당한데다, 꿈이라든가 열정도 없는 중년의 회사원 아저씨, 혹은 쳐다보기도 싫을 만큼 너무나 못생긴 여자(허물을 벗고 미녀로 거듭나는 스토리가 아니라면)가 주인공인 소설을 쓸생각을 한단 말인가. 그러나, 그 비주류의 감성에도 여러가지가 있어서, 늘 공감을 할 수는 없는 법인 것이다.

삼미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이하 팬클럽)은 루저들을 위한 소설이다. 그렇게 늘 꼴찌만 하고 살아도 괜찮다고 말하는. 그야말로, 듣고 싶었던 말이었다. (실제 수치상으로 꼴찌를 한 적이 한 번도 없음에도 나는 늘 꼴찌인 듯한 기분이다.)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이하 파반느)에 공감을 할 수 없었던 것은 결국, 나부터가 예쁘고 잘생긴 사람을 좋아하기 때문이었다. 나는 위로받는 쪽이 아니라 비웃음의 대상이 되는 쪽이었다. 게다가, 너무 웃겨서 읽으며 미친 사람처럼 혼자 낄낄거릴 수 밖에 없었던 팬클럽에 비해 파반느는 작정하고 밀어부친다. (물론 웃긴 대목이 없다는 뜻은 아니다.) 하긴, 가볍게 살자는 말을 너무나 애써 한다면 설득력이 확 떨어지지 않겠는가. 그러나 "다들 와와할 때, 거기에 휩쓸리지 않고 자신만의 상상력을 가지려면" 스스로에 대해서 시퍼렇게 날을 세우고 살 수 밖에 없겠지. 주인공이야 그게 쉽게 가능했다고 해도, 소녀시대가 아무래도 예뻐보이는 보통 사람들로서는, 저건 진짜가 아냐, 수없이 되뇌여야만 가능한 경지인 것이다. 거리에서라든지, 예쁜 사람을 보면 시선을 뗄 수가 없어서 멍하니 보고 있는 일이 종종 있는데, 그게, '사랑을 받기 때문에 그만큼 빛이 나는 것 뿐'이라고는, 아무래도 믿어지지가 않는다.
또 마음에 걸렸던 점은, '내면의 아름다움'과 '외면의 추함'을 결합시킴으로서, 그리고 그럼에도 (단 한 명의 예외를 제외하면) 선택받지 못하는 여성을 내세움으로서 역설적으로 외면의 아름다움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보통 사람들이 만들어가는 이 보통의 세상 속에서-를 강조했다는 것. (이건 그대로, 오래 전 '내겐 너무 가벼운 그녀'를 보면서 느꼈던 불편함와 같은 감정이었다) 아무리 박민규라도, 내면의 아름다움조차 가지지 못한 여성을 사랑하도록 만들 수야 없었겠지만서도.

by jumin | 2009/09/13 11:35 | 트랙백 | 덧글(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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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songinlife at 2009/09/15 13:06
얼마 만큼 '미'를 사랑하는 것이 인간의 본능인지 알 수 없지만. 시퍼런 자기검열이 분명 필요하다고 생각하면서도, 어느 순간 부터 나 자신의 욕망을 풀어줘야 한다는 생각에 멍하니 풀어놓고 살아왔었거든. '답답한' 사람이 되고 싶지 않다. 그런 생각이었을 거야.

그런데 정말 주변에는 앞뒤 안 돌아보고 와와 거리며 달려가는 사람 밖에 없는 세상이라, 이만큼 밀어붙이며 다시 생각해보라고 외쳐주는 소설이 있어서 고마운 마음이었어.

아, 그리고 주인공 여성이 그렇게 완벽한 사람이었나 하는 생각. 자신에게 문제가 있고, 그 문제에 대해 계속 생각하고 고민할 수 밖에 없는 사람들은 어떻게든 소양을 쌓아가게 되기 마련이라. 그런 결과로서의 '내면의 아름다움'이 아니었을까. 또한, 보통의 '욕망'조차도 부릴 수 없는 상황이었으니까, 나 스스로에게도 가끔 혐오스럽게 느끼는 허영 같은 것들도 없었을 테지.

덤으로. 벨라스케즈도. 라벨의 음악은 음악보다는 나름의 기억으로. 호감을 가질 수 밖에 없는 부재였음. :)
Commented by jumin at 2009/09/17 10:28
어 그 세번째 문단이 무슨 말인지는 완전 알겠는데, 그래도 클래식이라든지 독서, 혹은 산책을 좋아하는 여자라니, 너무 뻔하잖아! (저런 걸 좋아한다고 내면이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고.) 그것도 (역시 너무나 뻔했던 것이 너무나 인상적이어서 기억에 남았어),
...그 전에 내가 만난 여자애들과의 대화는 늘 이런 식이었다. '오빠, 나 예뻐?' '어 예뻐' '오늘 나 만날 수 있어?' '안돼' '그럼 선물 사줘'
이런 식으로 (보통 여자들이 가지고 있다고 흔히들 생각하는 일종의 천박함과) 대비시키면서.
Commented by songinlife at 2009/09/17 14:43
ㅇㅇ 소설 전체로 봤을 때 허점이 없는 꽉 차인 소설이라 생각하지는 않았어. 그건 아무래도 나이가 듬에 따라 읽은 소설수가 늘어남에 따라, 어떤 작품을 봐도 엥 여기는 비약이야, 영 어설프잖아 싶은 부분들이 눈에 띌 수밖에 없어서.
게다가 이 소설에는 (소재가 소재이다 보니) 좀 뻔한 부분이 많았다는 것도 인정.

그래도 (주민이 저 앞에 다른 글에 인용한 것처럼) 한두부분이라도 딱 와닿는 부분이 보이면, 그 만으로도 난 충분했다고 생각했었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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